건설임대 사업자 A씨는 서울 동작구 사당동에 건물 7채를 가지고 있다. 강남 업무지구와 가까워 원룸 임차수요가 끊이지 않는 지역이지만 120가구 중 7가구는 세입자를 찾지 못한 ‘빈 방’이다. 모두 주택도시보증공사(HUG) 전세보증금반환보증 가입이 불가능한 다가구 주택이다. A씨는 “인근 다세대 전세보다 1억원 이상 싸게 내놨는데도 쳐다보는 이들조차 없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서울 강서구 빌라 밀집 지역의 모습.
최근 원룸 임대차 시장에서 ‘다가구 전세’ 기피 현상이 뚜렷하다. HUG 전세 보증보험 가입이 어려워 보증금을 돌려받기 어려운 ‘위험한 주택’이라는 인식이 생기면서 전세 수요자들의 외면을 받는 것이다. 다가구 전세 수요가 줄어들면 기존 세입자의 보증금을 돌려주지 못하는 ‘악순환’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전세사기 사태의 ‘빌라 포비아’를 다세대보다 다가구가 더 크게 겪는 모양새다.
경향신문이 11일 부동산R114에 의뢰해 받은 자료(4일 기준)를 보면, 올해 서울 다가구 전·월세 계약 7만5447건 중 전세는 1만8115건으로 전체의 24.0% 수준이다. 다가구의 전세 비중은 2020년 43.9%에서 2021년 38.5%, 2022년 30.7%, 2023년 26.3%로 급감하는 추세다. 같은 기간 월세 비중은 2020년 56.1%에서 올해 76.0%로 꾸준히 늘었다.
다가구 주택의 전세를 기피하는 건 보증금 회수와 직결되는 정보를 파악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다가구는 여러 호실로 쪼개져있지만 집주인은 한 명이다. 보증금을 돌려받는 임차인 순서를 파악해야 하고, 이를 알기 위해 집주인 동의가 필수다. 집주인이 선순위 보증금 규모를 속인다 해도 세입자는 대책이 없다. 정부는 세입자가 집주인 동의 없이도 선순위 보증금 현황을 확인할 수 있게 하는 주택임대차보호법 개정안을 지난달 발의했지만 아직 국회 통과 전이다.
다가구는 HUG 전세 보증에 가입하기도 쉽지 않다. 지난해 5월부터 HUG 전세 보증에 가입하려면 보증금과 선순위 채권을 더한 금액이 ‘공시가격의 126%’ 이내여야 한다. 하지만 다가구 공시가는 시세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경우가 많다. 이에 보증에 가입할 수 있을 만큼 보증금이 대폭 낮은 빌라가 현실적으로 많지 않다. HUG가 올해 발급한 전세 보증 24만4341건 중 단독·다가구 비중은 3.9%(9634건)에 불과한 이유다.
전문가들은 이때문에 세입자들이 다가구의 전세를 꺼리는 현상이 불가피하다고 본다. 조정흔 감정평가사(경실련 토지주택위원장)는 “다가구는 통건물이라는 특성에 더해 불법건축물로 개조한 경우가 많아 정부의 전세사기 대책(피해주택 공공매입 등)에서도 사각지대에 놓여있었다”며 “다가구는 전세보다 월세로 임차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했다.
문제는 ‘다가구 포비아’로 인해 거래가 멈추면 기존 세입자의 보증금 미반환 위험도 커진다는 점이다. 임대인들은 다음 세입자를 구하기도 어렵고, 은행도 주택담보대출을 잘 해주지 않는다고 말한다. 서울 관악구의 다가구 주택을 보유하고 있는 B씨는 “살고 있던 아파트까지 팔아서 세입자 보증금을 내주고 있지만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했다.
최근 강서구를 제치고 서울에서 전세사기가 가장 많은 자치구에 오른 관악구도 다가구 비율이 60%(관악구전세피해지원센터)로 높은 편이다. 강희창 한국임대인연합회장은 “지금 터지고 있는 보증금 미반환 사고는 전세사기가 아니라 수년간 안정적으로 전세를 놓았음에도 보증가입이 안 된다는 이유로 역전세가 난 매물들”이라며 “다가구 보증금 미반환은 앞으로 더 늘어날 것”이라고 말했다.
앞으로는 더더욱 아파트쪽으로 부동산 투자족들이 몰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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