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달부터 수도권 스트레스 DSR 강화
시중은행, '조건부 전세자금대출' 취급 중단
서울 을지로 하나은행 본점 대출창구에서 한 고객이 대출상담을 받고 있는 모습.
"우리나라에서 서민이 집 살 때 대출 안 받고 살 수 있는 사람이 있나요? 대출을 조인다니, 서민은 수도권에 집 사지 말란 이야기 아닌가요?"(무주택자 40대 직장인 최모씨)
"이제는 전세대출에도 조건이 붙어 어려울 수 있다는데, 전세살이도 쉽지는 않겠어요."(서울 강북구에서 전셋집에 거주하는 30대 직장인 강모씨)
다음달부터 수도권 소재 집을 사는 매수자의 주택담보대출 한도가 크게 줄어들 전망입니다. 정부가 가계 부채를 잡기 위해 강력한 규제를 시행하기 때문입니다. 일부 시중은행에선 전세자금대출 문턱도 높일 예정입니다. 서민들의 삶은 점점 팍팍해져만 갑니다.
23일 금융권에 따르면 다음달 1일 스트레스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제도가 2단계로 올라갑니다. 2단계 스트레스 DSR에서는 가산금리를 0.75% 더하는 것으로 예정돼 있었지만, 금융당국이 가산금리를 1.2%포인트로 상향해 적용하기로 했습니다.
예를 들어 연봉 1억원으로 다른 대출이 없는 직장인이 주택담보대출을 변동금리 연 4%, 만기 40년의 원리금균등분할상환 방식으로 받을 경우 스트레스 DSR 1단계에선 0.38%포인트가 적용돼 7억5400만원을 대출받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수도권에 적용되는 1.2%포인트를 적용하면 대출한도는 6억7200만원으로 지금보다 8200만원이 줄어듭니다.
서울 시내 한 거리에 시중은행들의 ATM이 설치되어 있다.
연봉 5000만원의 직장인의 경우는 현재 3억7700만원을 받을 수 있지만 다음 달부터 수도권에선 3억3600만원만 가능해 지금보다 4100만원을 덜 받습니다.
초강력 대책을 내놓은 까닭은 가계대출을 잡기 위해서입니다. 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 등 5대 시중은행의 가계대출 잔액은 14일 기준 719조9725억원으로 집계됐습니다. 지난달 말 715조7383억원에서 이달 들어 2주일 만에 4조2342억원 더 불어난 규모입니다.
가계대출 급증의 원인은 주담대의 증가입니다. 5대 은행의 주담대 잔액은 14일 기준 562조9908억원으로 집계됐습니다. 지난달 말 559조7501억원에서 이달 들어 3조2407억원 더 늘었습니다.
서민을 대상으로 하는 디딤돌대출과 전세자금 버팀목대출 금리도 인상됐습니다. 디딤돌대출(주택 매매) 금리는 기존 연 2.15~3.55%에서 2.35~3.95%로, 버팀목대출(전세) 금리는 기존 1.5~2.9%에서 1.7~3.3%로 올랐습니다. 이들 대출은 주택도시기금 재원으로 공급되는 정책금융상품인데, 서민 대출자들이 내야 할 이자를 늘려 규제를 가한 것입니다.
시중은행을 중심으로 전세대출도 조이는 움직임도 포착됩니다. 신한은행은 오는 26일부터 '조건부 전세자금대출' 취급을 중단합니다. △임대인이 소유권을 이전하는 경우 △선순위채권을 말소하거나 줄이는 경우 △ 주택을 처분하는 경우 등 조건이 붙은 전세대출은 받을 수 없습니다.
서울 중구 남산에서 바라본 시내 아파트 밀집 지역.
당장 예상되는 풍선효과로는 전셋값 상승입니다. 세를 끼고 집을 사면 자연스럽게 전세 물건이 시장에 풀리게 됐는데 이런 물량을 기대하기 어렵게 됐기 때문입니다. 공급이 부족한 서울을 놓고 보면 전세 물건이 풀릴 곳이 마땅치 않아 가격이 더 치솟을 수 있습니다.
전세 실수요자들이 전셋집을 찾지 못하고 월세로 밀려나게 되면 더 큰 비용을 부담하는 상황에 놓일 수도 있습니다. 주거 안정성이 떨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만약 여유가 있어 매매 시장으로 넘어간다면 매수 수요가 늘어나면서 집값을 밀어 올리는 '방아쇠' 역할을 할 수도 있습니다.
강력한 대출 규제에 서민들의 불만이 쏟아집니다. 서울에서 직장을 다니는 김모씨는 "사실상 서민들 집 못 사게 하는 정책"이라면서 "돈 많은 사람들이야 대출이 무슨 상관이 있겠느냐 결국 잘 사는 사람들만 더 잘 살게, 서민들은 ‘내 집 마련’도 못하게 하는 것"이라고 토로했습니다.
한 부동산 시장 전문가는 "가계부채가 급증하면서 상황이 심각한 것은 이해하지만 규제가 서민들이 집을 마련하는 데 좋지 않은 영향을 준다면 이 또한 문제"라면서 "소위 잘 사는 사람과 못사는 사람의 격차를 더 벌려 시장 양극화가 심화할 가능성도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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