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관악구 봉천동에 사는 윤모(29)씨는 오는 5월 오피스텔 월세 만기를 앞두고 빌라 전세를 알아보다 포기했다. 윤씨는 “전세 사기가 무서워 전세 보증보험에 가입되는 매물을 보여달라고 했더니 보증금 1억6530만원에 월세 20만원을 따로 내라고 하더라”며 “전세 대출 이자에 월세 20만원까지 내면 지금 사는 월세보다 더 비싸 그냥 월세를 유지하기로 결정했다”고 말했다.
5월 이후 전세 물건을 내놓은 빌라 임대인들이 전세보증금을 낮추는 대신 월세를 추가로 받는 경우가 늘고 있다. 주택도시보증공사(HUG)의 전세보증금 반환보증보험 가입 요건이 5월부터 빌라 공시가격의 1.5배에서 1.26배로 강화되자, 그 차액을 월세로 보전하겠다는 것이다. 정부는 돈 한 푼 없이 전세 보증금으로 빌라를 사들인 후 사라지는 ‘무자본 갭투자 사기’를 막기 위해 이 같은 조치를 했다. 하지만 전세보증금을 ‘보증보험 한도’의 최대치까지 받으려 하다 보니, 만원 또는 십만원 단위로 끊어지는 독특한 매물이 나오고 있다. 자금 부족으로 아파트 대신 빌라를 선택한 ‘부동산 약자’들의 부담이 더 가중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최근 서울 강서구 화곡동의 전용 25㎡ 빌라(공시가격 1억4200만원)는 ‘보증금 1억7892만원, 월세 15만원’ 조건에 매물로 나왔다. 오는 6월 계약이 만료되는 기존 세입자는 보증금 2억원에 세들어 살고, 주택도시보증공사(HUG)에 ‘2억원 보증보험’도 가입해 있다. 하지만 오는 5월부터 이 빌라의 보증보험 한도는 1억7892만원으로 낮아진다. HUG의 보증 한도가 지난해에는 공시가격의 1.5배였지만, 올해는 1.26배로 낮아졌기 때문이다. 그러자 집주인은 보증보험 한도인 1억7892만원까지 보증금을 받고, 기존 보증금과의 차액은 월세 15만원으로 보충하기로 한 것이다.
이렇게 만원, 십만원대로 끊어지는 독특한 매물은 빌라 세입자들이 ‘보증보험 한도’까지만 보증금을 내려 하자, 집주인들이 그 최대치까지 보증금을 받기 때문이다. 5월 입주 세입자를 찾고 있는 인근의 또 다른 빌라 역시 2년 전 1억7000만원이던 전세보증금을 작년 공시가격(1억1500만원)의 1.26배인 1억4490만원으로 내렸다. 대신 월세 19만원을 더 받기로 했다.
전세 사기가 기승을 부렸던 서울 화곡동과 김포 등에선 ‘보증금 1억7220만원에 월세 10만원’ ‘보증금 1억6880만원에 월세 10만원’ ‘보증금 9390만원에 월세 15만원’ 같은 매물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화곡동의 한 공인중개사는 “요즘은 전세 보증보험에 가입되지 않으면 세입자들이 들어오려 하지 않는다”며 “5월 이후 입주 예정으로 나온 전세 매물들은 거의 다 이런 식으로 보증 가입 한도에 맞춰 반전세로 조정되는 상황”이라고 했다.
오는 5월부터 ‘보증보험 한도’ 축소에 공시가격마저 하락하자, 빌라 전세들은 잇따라 반전세로 전환되고 있다. 서울 동대문구 이문동 빌라 집주인 장모(56)씨는 2억7000만원에 전세를 놓고 있다. 하지만 5월 새로운 세입자를 구하기 위해서는 보증금을 HUG 보증보험 한도에 맞춰 2억2000만원으로 낮추고, 대신 월세 15만원을 받기로 했다. 장씨는 “보증금 차액 5000만원은 은행에서 빌려야 하는데, 그 이자를 월세로 충당하려한다”고 말했다.
세입자들은 이 같은 반전세가 부담스럽다. 서울 화곡동에서 빌라 전세를 찾는 이모(37)씨는 “온전히 전세로만 나오는 빌라 매물은 찾기가 너무 어렵고, 그런 경우 HUG 보험에 가입이 안 되는 것도 있다”며 “이자처럼 월세를 꼬박꼬박 내는 것이 큰 부담”이라고 말했다. 고종완 한국자산관리연구원장은 “전세금을 내린 만큼 월세로 돌리는 금액이 더 커질 수 있다”며 “빌라 세입자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청년층의 주거비 부담이 가중될 우려가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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