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세권 내 집이 비역세권 된다구요?"
분당 양지마을, '제자리 재건축' 갈등 격화
1기 신도시 통합재건축으로 불똥 '확산'
업계선 "터질 게 터졌다…갈등 번질 것"
성남시 분당구 수내동 양지마을 1단지 금호 모습.
1기 신도시에서 추진되는 통합재건축이 시작부터 삐걱대고 있다. 분당신도시 일부 단지에서 역세권 주민들이 재건축 후 비역세권으로 밀려날 상황에 부닥치면서 통합재건축을 추진하는 대부분 단지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23일 정비업계에 따르면 분당 선도지구로 선정된 양지마을에서 통합재건축을 둘러싼 갈등이 격화하고 있다. 양지마을은 '1단지 금호(1076가구)'와 '2단지 청구(896가구)', '3단지 금호(414가구)', '1단지 한양(1010가구)', '2단지 한양(996가구)' 주상복합(462가구) 등으로 구성됐다.
문제는 선도지구 신청을 위한 동의서 징구 당시 단지별 재건축추진위원장들이 합의한 '제자리 재건축' 원칙을 통합재건축추진위원회가 부인하면서다. 동의서 징구 당시 작성된 합의서에는 '기존 각 단지가 위치한 블록을 기준으로 우선권을 배정해 조합원 분양 신청 권한을 부여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다만 통합재준위는 이 합의서에 법적 효력이 없다며 "일부 소유주의 무리한 주장"이라고 선을 긋는 상황이다. 당시 5개 아파트 단지 가운데 1개 단지가 해당 합의서에 불참했고, 구체적인 사항은 소유주 전체 회의를 통해 정하기로 했던 만큼 해당 합의서를 근거로 특정 단지 조합원에게 우선권을 보장하는 것은 불가하다는 것이 통합재준위의 입장이다.
분당 양지마을 끄트머리에서 바라본 수내역(왼쪽)과 1단지 금호에서 바라본 수내역 모습. 사진=오세성 한경닷컴 기자
통합재건축은 여러 아파트 단지가 하나로 합치는 만큼 재건축 후 주택 위치가 달라질 수 있다. 수인분당선 수내역 도보 2분 거리 역세권에 거주하는 1단지 금호 주민들은 재건축 후 전철역에서 10분 넘게 떨어진 비역세권을 배정받을 수 있다는 의미다.
역세권 주택을 받을 가능성이 생긴 나머지 단지 소유주들은 차분한 모습이지만, 갑작스레 비역세권으로 옮겨갈 상황에 놓인 1단지 금호 주민들은 격하게 반발하고 있다. 한 소유주는 "각자 제자리에서 재건축하기로 합의해 동의서를 냈는데, 합의를 어긴다면 통합재건축을 할 이유가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들은 최근 법무사를 초청해 자체 주민설명회를 여는 등 법적 대응도 예고했다.
나머지 1기 신도시 노후 아파트 소유주들도 양지마을에서 벌어진 분쟁의 향방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1기 신도시 재건축에 있어 정부가 인프라 확충을 위해 통합재건축을 우대했고, 이에 따라 양지마을과 마찬가지로 여러 단지를 묶은 통합재건축이 일반적인 형태가 됐기 때문이다. 특히 같은 블록으로 통합된 단지 사이에도 입지 차이가 있는 곳은 이번 분쟁의 결과에 따라 통합재건축이 무산될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분당신도시 선도지구 단지 배치도. 사진=성남시
유사한 사례도 적지 않다. 성남시 분당구 정자동 '상록우성'과 '상록라이프'는 지난해 통합재건축을 추진하다 제자리 재건축을 두고 주민 갈등이 격화하면서 단독 재건축으로 선회했다. 상록우성은 지하철 신분당선 정자역에서 약 200m 떨어져 있지만, 상록라이프는 500m가량 떨어진 점이 문제가 됐다. 분당구 이매동 '풍림', '선경', '효성'도 통합재건축을 시도했지만, 제자리 재건축으로 갈등을 빚어 갈라섰다.
부천시 원미구 중동의 한 개업중개사는 "지금 집은 지하철역이 코앞에 있는데, 재건축 후에는 10분 거리로 떨어진다거나, '공원뷰'를 누리다가 '앞동뷰'로 바뀐다면 누가 좋아하겠느냐"며 "이런 갈등이 분당만의 이야기는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안양시 동안구 호계동의 한 개업중개사도 "특별정비예정구역을 지정할 때 '우리가 왜 입지가 떨어지는 단지랑 묶여야 하느냐'고 불만을 갖는 단지들이 있었다. 제자리 재건축이 언제든 무효가 될 수 있다면 그런 곳들부터 갈등이 터져 나올 것"이라고 내다봤다.
관련 업계에서는 '터질 것이 터졌다'는 반응이 나온다.
한 정비업계 관계자는 "제자리 재건축 자체가 선도지구 경쟁 때문에 나타난 무리한 합의"라며 "제자리에서 재건축하고 싶다면 독자적으로 재건축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일각에서는 통합재건축도 독립채산으로 진행하면 자리를 유지할 수 있다고 하지만, 비현실적인 이야기"라며 "나머지 단지 소유주 전원이 동의해야 가능한데, 비역세권에서 역세권으로 갈 기회를 포기할 사람이 얼마나 되겠느냐"고 짚었다.
어마어마한 분담금을 내고 재건축을 진행했는데 나쁜 위치를 받는다면 억울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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